1990년 작 홍콩 영화 《무적행운성》은 주성치 주연의 코미디 액션물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 그 안에 이렇게 두꺼운 인간애가 담겨 있을 줄 몰랐습니다. 쓰레기를 줍는 여자와 전문 사기꾼이 유언장 쟁탈전에 뒤엉키는 이야기인데,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한켠이 묘하게 저려옵니다.

무적행운성, 유산 전쟁의 배경, 그리고 제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것
홍콩 영화 하면 보통 어둡고 거친 누아르(noir) 장르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누아르란 범죄, 폭력, 배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는 영화적 사조로, 1940~50년대 할리우드에서 시작해 홍콩 영화 전성기에 독특한 방식으로 흡수된 장르입니다. 실제로 당시 비디오 대여점에서 이 영화 케이스를 보면 총격 액션물처럼 포장되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무적행운성》은 슬랩스틱 코미디에 훨씬 가깝습니다.
영화는 호화 저택에서 시작됩니다. 위독한 아버지에게 유언장을 고치라며 윽박지르고 부인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장남 앞에, 왕고하신 작은아버지가 등장해 유산 전부를 딸 비비에게 남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둡니다. 이 서막 하나만으로 이 영화가 탐욕과 위선을 정면으로 건드릴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쓰레기를 주우며 살아가던 아봉(오군여)은 뼈빠지게 번 돈을 챙긴 쓰레기 남친에게 버림받은 뒤 납치되어 저택으로 오게 됩니다. 비비와 외모가 똑 닮았다는 이유였죠. 생전 처음 입어보는 예쁜 옷 앞에서 거절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아봉의 모습은, 웃기면서도 어딘가 서늘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이 영화가 단순한 오락물 이상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90년대 홍콩 영화 시장이 거친 장르를 선호했던 건 실제로도 확인되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홍콩 영화 산업은 연간 제작 편수 기준으로 세계 3위 규모를 유지했으며, 액션과 범죄 장르가 흥행을 주도했습니다.
그 시장에서 이 영화가 코미디와 인간 드라마를 중심으로 자기 색깔을 지킨 것은, 지금 돌아봐도 꽤 배짱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슬랩스틱 뒤에 숨겨진 계층 서사, 제가 실제로 확인한 것
일반적으로 주성치 영화는 웃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시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무적행운성》에서 슬랩스틱(slapstick)은 단순한 웃음 장치가 아닙니다. 여기서 슬랩스틱이란 과장된 신체 동작, 황당한 상황 설정, 빠른 리듬의 개그를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 양식으로,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시절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입니다. 이 영화에서 슬랩스틱은 계층 간 충돌을 표현하는 언어로 기능합니다.
사기꾼 고완성(주성치)은 황 탐정에게 미남이라는 칭찬 한 마디에 넘어가 거절했던 의뢰를 수락하고, 금속 탐지기를 들고 유언장을 훔치러 나섭니다. 가짜 비비로 저택에 잠입한 아봉은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고급 식기를 앞에 두고 눈치를 봅니다.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은 동시에, 이 두 사람이 그 공간에서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인지를 증명합니다. 저 경험상 이런 이중 서사를 코미디로 녹여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입니다.
영화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격투 장면이 아니라 편지 장면입니다. 삼촌이 글을 못 읽는 아봉을 위해 남긴 편지를 누군가 대신 읽어주는 그 짧은 시퀀스에서, 저는 예상치 못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코미디 영화에서 이런 감정을 끌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영화에서 짚어볼 만한 서사 구조의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유언장이라는 물질적 탐욕의 상징이 결말부에서 두 주인공에 의해 자발적으로 포기됩니다.
- 가짜 정체성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진짜 내면을 먼저 발견하는 역설적 구조가 있습니다.
- 악당인 장남 일당과 주인공들의 대비가 재산 여부가 아닌 인간성 여부에 집중됩니다.
코미디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영화학자들은 오랫동안 주목해 왔습니다. 웃음이 현실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안전하게 다루는 서사 장치로 작동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축적되어 있으며, 이는 홍콩 영화 전성기의 코미디 장르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후반부 선상 격투, 제가 솔직히 아쉬웠던 지점
이 영화의 한계는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장남 일당이 보석을 챙기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클라이맥스 직전, 갑자기 황 탐정이 거북목의 추진력으로 무도인을 처치하고, 아성이 초인적인 탄력으로 도망치는 장면이 연달아 등장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와이어 액션(wire action)이란 배우를 철사로 매달거나 잡아당겨 중력을 거스르는 동작을 연출하는 기법으로, 홍콩 영화의 무협 장르에서 발전해 전 세계 액션 영화에 영향을 준 대표적인 촬영 기술입니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앞선 서사에서 장남의 악랄함이 충분히 쌓여 스릴러적 긴장감이 형성된 상황에서, 만화적 슬랩스틱이 터지는 순간 그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려버립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서 몰입이 끊겼습니다. 감독 본인이 황 탐정 역으로 직접 출연해 연출 의도를 직접 구현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개연성보다 볼거리를 우선한 판단은 이 영화가 가진 본연의 무게감을 스스로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남기는 인상은 강합니다. 아성과 아봉이 서로의 진짜 이름과 정체를 고백하는 마지막 장면은, 유언장이나 재산보다 훨씬 값진 무언가를 두 사람이 얻었음을 조용히 확인시켜 줍니다. 억지스러운 연출의 아쉬움이 있어도, 이 장면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가 설득력을 회복합니다.
정리하면, 《무적행운성》은 슬랩스틱이라는 껍데기 안에 계층 서사와 인간애를 녹여낸 작품입니다. 후반부 연출의 과유불급이 아쉽지만, 주성치와 오군여의 앙상블은 그 아쉬움을 메우고도 남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코미디로 가볍게 시작해서 어느 순간 진지해지는 그 특유의 온도 변화를 직접 경험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