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했을 때 돌아온 처벌이 고작 '정학'이라면, 어른을 믿으라는 말은 누가 해야 할까요. 저는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 같은 반 누군가가 조용히 무너져 가는 걸 보면서도 모의고사 오답 노트만 들여다보던 제 자신이 지금도 가끔 생각납니다. 영화 《소년시절의 너》를 보고 나서야 그 시절의 이름 없는 죄책감에 비로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소년시절의 너, 가오카오라는 이름의 절벽 앞에서
영화는 대입 시험을 앞두고 한 여학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가오카오(高考, Gaokao)란 중국의 대학입학시험으로, 우리나라 수능과 비슷하지만 단 한 번의 결과가 대학 진학은 물론 사회적 계층 이동 전체를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압박의 밀도가 다릅니다. 여기서 가오카오란 쉽게 말해 '중국판 인생 결전'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기 때문에 압니다. 모의고사 점수가 조금만 빠져도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그 감각. 그런데 영화 속 천니엔(주동우 역)은 거기에 학교 폭력까지 고스란히 얹혀 있습니다. 죽은 급우 샤오뎨의 시신에 조용히 옷을 덮어준 것이 전부인데, 그 단 한 번의 도덕적 행동이 메이 일당의 표적이 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안타까움보다 분노였습니다.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이 더 많이 맞는 구조, 이게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더 끔찍했습니다.
학교 폭력의 대물림 구조를 설명할 때 심리학에서는 '희생양 전이(Scapegoating transfer)'라는 개념을 씁니다. 희생양 전이란 집단 내 폭력의 표적이 제거되면 그 집단의 공격성이 새로운 약자에게로 고스란히 옮겨붙는 현상을 말합니다. 천니엔의 의자에 붉은 잉크가 쏟아지는 장면은 이 개념을 교과서보다 훨씬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국내 청소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피해 학생의 약 40% 이상이 '신고 후 보복 피해'를 경험한다고 보고되었습니다(출처: 교육부). 천니엔이 경찰에 신고한 뒤 정학이라는 솜방망이 처벌만 내려지고, 가해자들이 오히려 더 집요하게 달려드는 장면은 이 통계를 스크린 위에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른을 믿을 수 없게 되는 과정이 이렇게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니까 더 서글펐습니다.
영화가 천니엔을 통해 드러내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가오카오라는 단일 지표로 수렴되는 과열된 교육 시스템
- 학교 폭력 신고 이후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법적·제도적 공백
- 엄마의 불법 행상이라는 빈곤 구조와 탈출 불가능한 계층의 압박
- 방관자들의 침묵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공모

머리를 밀며 완성되는 처절한 연대
천니엔이 샤오베이(이양천새 역)를 처음 만나는 방식은 아이러니합니다. 폭행당하는 양아치를 겁에 질린 채로 지나치다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 그 한 번의 눈빛이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열어버립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엔 이 설정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보호해줄 어른이 한 명도 없는 사람들끼리는 이런 식으로 서로를 알아본다는 게, 오히려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할 때 영화가 선택한 장치가 바로 삭발 장면입니다. 메이 일당에게 납치되어 머리가 강제로 잘린 채 돌아온 천니엔을 보고, 베이는 말없이 바리캉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밀어버립니다. 이 장면에서 저는 멈추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연인이라서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수치를 자기 몸에 새기는 것으로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제 경험상, 어떤 위로의 말보다 이 장면이 더 깊이 박혔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가면 장르가 사회 드라마에서 범죄 스릴러로 전환됩니다. 내러티브 전환(narrative shift)이란 한 작품 안에서 장르의 문법이나 서사 중심이 의도적으로 교체되는 기법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전환이란 전반부의 묵직한 사회 고발 메시지를 유지하면서 후반부에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선택이었을 텐데, 솔직히 이 부분은 제가 보기에 다소 아쉬웠습니다.
정 형사가 천니엔과 베이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이미 자백했다"는 식의 허위 유도 심문을 반복하는 장면은 전반부의 리얼리즘을 다소 잠식하는 느낌을 줍니다. 미란다 원칙(Miranda Rule)이란 수사 기관이 피의자를 신문할 때 반드시 묵비권과 변호인 선임권을 고지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말하는데, 영화 속 심문 방식은 이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이것이 영화적 과장인지, 아니면 중국의 수사 관행을 반영한 것인지는 따로 짚어봐야 할 문제이지만, 후반부 개연성이 다소 흔들리는 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주동우와 이양천새의 연기는 이 모든 서사적 균열을 봉합하고도 남습니다. 특히 두 배우의 미장센(mise-en-scène) 활용이 인상적인데,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배우의 위치, 조명, 소품, 구도를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감독은 천니엔이 책더미 사이에서 단어를 외우는 장면과 비 내리는 어두운 골목의 장면을 번갈아 배치하며, 제도의 폭력과 거리의 폭력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자란다는 걸 시각적으로 설득합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약 60%가 "주변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응답했습니다. 천니엔이 정 형사의 전화를 받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장면이 이 숫자와 겹쳐 보였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해봤자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학습해버린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된 천니엔, 그 뒤를 여전히 그림자처럼 지키는 베이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해피엔딩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비극이라고 하기엔 두 사람이 살아남았습니다. 저는 이 결말을 보면서 오랫동안 영화관 불이 켜지는 걸 느끼지 못했습니다.
《소년시절의 너》는 후반부 수사 장면의 과장과 멜로적 전개라는 한계를 안고 있지만, 입시 지옥과 학교 폭력이 어떻게 한 인간을 구석으로 몰아붙이는지를 이토록 정직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흔하지 않습니다.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를 뉴스로만 접해온 분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그 온도를 직접 느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불편하고 먹먹할 겁니다. 그래도 봐야 할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