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겨울밤, 이유도 모르고 마음이 허전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2026년의 어느 차가운 밤,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게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안고 1993년작 《패왕별희(Farewell My Concubine)》의 감독판 오리지널 버전을 찾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 밤을 통째로 날렸습니다. 잠은커녕 뭔가를 삼키지 못한 채 멍하니 새벽을 맞았습니다.

패왕별희, 경극이라는 운명,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순애보
영화는 1920년대 베이징의 한 뒷골목에서 시작됩니다. 가난한 기생의 아들로 태어난 어린 도우즈는 손가락 하나가 잘리는 고통을 치르고 경극단에 맡겨집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 잔혹함이 너무 태연하게 묘사되어서, 오히려 더 깊이 박혔습니다.
경극(京劇)이란 중국의 전통 무대 예술로, 노래·무술·무용·연기를 결합한 종합 공연 양식입니다. 쉽게 말해 동양의 오페라라고 볼 수 있는데, 특히 단역(旦役)이라 불리는 여성 배역은 역사적으로 남성 배우가 전담해왔습니다. 여기서 단역이란 경극에서 여성 인물을 연기하는 배역 유형을 가리키며, 이를 소화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여성적인 몸짓과 발성을 훈련받습니다. 도우즈가 "나는 본래 계집아이로 태어나"라는 대사를 끝내 입에 올리지 못해 모진 매를 맞던 장면은, 단순한 훈련 장면이 아닙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이 강요와 폭력으로 빚어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선배 시투, 즉 훗날 단샬루가 되는 인물에게 깊이 의존하게 됩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데이의 샬루를 향한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나 집착을 넘어서 그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였다는 점입니다. 카타르시스(catharsi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리스 비극 이론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관객이 무대 위 비극을 통해 감정을 정화하고 해방감을 느끼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그 카타르시스를 조금씩 쌓아올립니다. 데이가 홍등가의 기생 국선에게 샬루를 빼앗기는 순간부터, 그 균열이 시작됩니다.
영화가 다루는 역사적 격동기를 간단히 짚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20~30년대 군벌 시기: 경극단의 가혹한 훈련과 데이·샬루의 성장
- 중일전쟁(1937~1945): 일본군 점령 하에서의 굴욕적 공연과 체포 위기
- 국민당 집권기: 간첩죄 혐의와 국선·데이·샬루 세 사람의 갈등 심화
- 공산당 정권 수립 이후: 체제 선전에 동원되는 예술과 그 안에서의 마찰
- 문화대혁명(1966~1976): 인민재판과 서로를 향한 배신, 그리고 파국
이 타임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이 영화가 묻는 게 무엇인지 보입니다. 역사가 개인을 어떻게 짓밟는가가 아니라, 짓밟히면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은 인간이 얼마나 고독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수상한 이 작품은 현재 네이버 영화 기준 평점 9.6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황금종려상이란 칸 국제 영화제의 최고상으로, 그해 공식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단이 뽑은 최우수 작품에 수여됩니다.
중국 영화가 이 상을 받은 건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검열이 남긴 상처, 그리고 후반부의 구조적 아쉬움
그런데 이 걸작에도 솔직히 말하면 아쉬운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가 제작된 1993년은 중국의 대외 개방 초기였고, 동성애 묘사와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당국의 검열 대상이었습니다.
검열(censorship)이란 국가나 권력 기관이 출판·방송·예술 작품의 내용을 심사하여 특정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장 내관이 어린 데이를 성폭행하는 장면, 그리고 원 대인과 데이 사이의 동성애 장면이 중국 국내 상영 버전에서 대거 잘려 나갔습니다. 제가 직접 감독판 오리지널 버전을 보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 장면들이 없으면 데이가 왜 그토록 현실을 거부하고 우희라는 배역에만 집착하는지가 절반쯤 사라집니다. 인물의 개연성이 통째로 훼손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중국 국내 상영 버전에서는 데이가 자살하지 않고 샬루와 공연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페이드아웃 됩니다. 이건 영화를 정통 비극에서 그냥 시대극으로 바꿔버리는 타협입니다. 패왕별희라는 제목 자체가 초패왕 항우와 우희의 이별, 즉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에서 왔는데, 그 결말을 지워버리면 영화가 말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 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반부 플롯에도 제 경험상 한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극단에서 키운 제자 사오가 공산당 체제를 등에 업고 스승 데이를 배신하는 과정이 너무 급작스럽습니다. 전반부가 인물들의 심리를 얼마나 세밀하게 쌓아 올렸는지를 생각하면, 사오의 변절은 내면적 고뇌 없이 도식적인 악역으로 소비되는 느낌이 강합니다. 서사의 입체감이 그 지점에서 한 번 꺾입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영화 용어가 있습니다.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색채, 배우의 위치, 소품 등을 통틀어 연출자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첸카이거 감독은 전반부에서 경극의 화려한 색채와 회색빛 현실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미장센으로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이후 결말부로 달려가는 속도는 그 섬세함에 비해 다소 다급해 보입니다.
이는 단순히 감독의 실력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등 주요 영화 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외부 검열과 상영 버전의 충돌은 편집 의도 자체를 뒤틀어 본래 기획된 서사 구조를 손상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패왕별희》 후반부의 급박함도 상당 부분 그 외압의 흔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화대혁명 시기 인민재판 시퀀스는 영화사에서 가장 비장한 장면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홍위병들의 광기 속에서 샬루가 데이의 동성애를 고발하고, 데이가 국선의 기생 과거를 폭로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눈물이 아니라 그냥 멍해졌습니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서로를 가장 깊이 찌를 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냉정하게 그려진 장면을 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이 영화의 위대함은 완벽한 시나리오에서 오는 게 아닐 수 있습니다. 검열과 타협으로 여기저기 상처 입은 채로도, 장국영이라는 배우가 뿜어낸 영혼의 연기가 그 모든 균열을 메워버렸기 때문입니다. 눈빛 하나로 우희 그 자체가 되던 그 순간들은,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오래 남습니다.
《패왕별희》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반드시 감독판 오리지널 버전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잘린 버전으로 보는 건 손이 묶인 채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 것과 비슷합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다른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그건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한 증거입니다.